참으로 오랫만에 가족만의 나들이를 가게 되었습니다.
풍요로운 대지의 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노오란 단풍잎이 아스팔트에 지친 눈을 쉬게 하는 곳
서늘한 바람 오감을 희롱하는 그 곳으로 떠난
미리벌 가족의 가을 나들이!
이제는 또 다른 가을의 전설이 되어 버린
짧은 금원산 나들이를 반추해 봅니다.
.
.
.
토요일 퇴근과 동시에 금원산을 향해 길을 나섭니다.
한 때 매일 아침 거닐며 벗이 되어 주었던 함양 용추뜰도 황금빛 결실로 가득합니다.
가을 걷이가 한창인 곳곳에는 바쁜 일손 놀려 쉴 틈이 없습니다.
이 무렵은 '부지깽이도 곤두선다'는 대표적인 농번기입니다.
부쩍 짧아진 해에 허리 한 번 펼 새 없는 할머니의 키질 끝에서
이름 모를 가족의 뭉클한 사연이 묻어 나옵니다.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엿봅니다.
지난 여름 4대 대가족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금원산 계곡가에 자리를 잡습니다.
쌓인 낙엽 사이로 어두워진 주변을 밝히고 가족만의 조촐한 만찬을 갖습니다.
동네 구루마 장수의 바베큐 한 점과
솔민이 녀석 지난 여름 귀국길에 선물로 사온 와인 한 병
(두 달간 스위스 생활 간식비를 쪼개어 꼬깃 꼬깃 코 묻은 돈으로 산 넘인지라
기특한 마음에 고이 고이 아껴 두었다가 이번 나들이에 꺼내 봅니다.)
그리고 집에서 싸 간 푸성귀 반찬이 메뉴의 전부이지만
제법 쌀쌀한 가을 저녁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먹고 마시는 이 순간
그 누구보다 행복합니다.
깊어 가는 가을 밤을 송두리채 차지한 것만 같은 지금
금원산의 가을 밤은 모닥불 아래 우리 가족과 하나가 됩니다.
.
.
.
다시 맞는 이른 아침
타프도 걸치지 않은 우리 가족의 살림살이에
밤새 새로운 낙엽 친구들이 동행합니다.
따뜻한 보금자리를 보장해주는 라운지나 전기장판은 펼 수 없는 곳
하지만, 그만큼 그녀의 품 속으로 깊숙히 자리 할 수 있는 곳
그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 포근함이 좋습니다.
미처 반도 불지피지 못한 소나무 둥치 너머로
쌓여 가는 낙엽 만큼 고요하게 아침이 나립니다.
간 밤 귀를 즐겁게 해주던 가을의 물소리가
아침을 깨우는 산새들의 노랫 가락으로 이어지는 이 곳
금원산에 조용히 아침이 찾아 옵니다.
그녀의 손길 닿는 곳마다 그려지는 수채화 한폭을 감상하며
물가를 거닐어 봅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핫팩에 침낭하나 의지하고 잠든 지난 밤이지만
솔민이는 반팔차림으로, 미리내는 껴입은 옷을 벗어 던지며 잤던 포근한 밤
깨우는 이 없지만, 하나 둘 일어나 아침을 맞이 합니다.
이리 좋은 놀이터가 문 앞에 있으니
자연과 친구되는 일은 시간 문제인가 봅니다.
만나면 좋은 친구~ 가 되는
모자는 아침부터 신이 났습니다.
빛 고운 단풍 아래에서 밤과는 또 다른 아침상을 받습니다.
어림도 없는 장작패기 놀이도 해보고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손 내밀면 잡힐 것 같은
가을을 마음 속에 담아 봅니다.
아이는 먼 훗날 오늘의 가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그렇게 노랗게 빨갛게 단풍 든 숲에서 오전을 보냅니다.
열 여섯 한창 부푼 꿈 그려 나갈 솔지.
학원에 과외에 찌든 현실이 안스럽기도 하지만
내년이면 한층 치열해질 세상과 홀로 맞서야 합니다.
경쟁에서 뒤 처지면 아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처럼 가르쳐야만 하는 아비는
이 넓은 자연 속에서 한 없이 작아져만 갑니다.
하지만 현실 탓만 하고 있기에는
오늘 이 자리는 우리 가족에게 너무 과분하기만 합니다.
행복한 이 모든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기로 합니다.
서로 사진찍기 놀이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야릇한 표정의 미리내도 담아 보고
장난끼 가득한 솔민이 녀석과
정모 기념으로 미리내와 나란히 볶고 온 머리에 자꾸 신경이 가는 미리벌도 담깁니다.
'오드리 될뻔' 스타일의 안경을 뺏어 들고는 머쓱하여.......
*^________^*
그냥 마주보고 앉아만 있어도 행복한 시간
그 시간을 잠시 접어 둔 채 또 다른 그녀를 보러 길을 나섭니다.
지난 여름 초록으로 찬란히 빛나던 그 숲은
붉은 옷으로 이 가을에 하나 둘 불을 당깁니다.
지난 해 가을 끝자락을 부여잡고 올랐던 유안청폭포 가는 길
그곳의 캔바스에는 지금 막 가을로 덧칠해 지고 있는 중입니다.
마치 이대로 시간이 멎어 버릴 것만 같은
유안청폭포에는 가을 한자락 고이 나리고 있습니다.
너무 야위어 버려 실개울처럼 흘러 내리는 가을 아래
조용히 앉아 그녀의 숨결을 느껴 봅니다.
욕심많은 녀석은
제가 무슨 강태공이라도 된 양 가을을 낚아 보려는 것일까요?
휴일을 맞아 이 계절을 더불어 즐기려는 사람들 속에 묻혀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을 보냅니다.
즐거웠던 시간을 뒤로 한 채
다시 길을 되돌아 갑니다.
'유안청 2폭포'에서 추억 한 자락 다시 주워 담고
고운 낙엽 켜켜이 쌓여
깊어만 가는 그녀를 남겨둔 채 돌아 옵니다.
남은 음식 모아 주린 배에 싸 들고
은행잎 물들어 가는 길을 따라 돌아 옵니다.
지갑은 한결 가벼워졌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대게와 함께 짧았던 나들이 길을 마무리 합니다.
.
.
.
.
.
살아 숨쉬는 이 모든 순간을 최고로 만들고 싶습니다.
오늘 내가 배운것들이 진리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믿으며
내일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참고 견디기보다는
이 순간만은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어 가고 싶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각자의 궤도를 그리며 살아가던 일상에서
모처럼 하나된 이번 캠핑은
무겁던 가볍던, 하나씩 짊어지고 있는
제각각 다른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 놓고
같은 곳을 향해
소리없이 흘러가는 물줄기를 닮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돌아 보게 될
우리 생에 화려했던 기억 하나 덧칠하고 싶었습니다.
잘익은 포도주처럼 그윽한 그 곳에서 보낸 하룻밤처럼
이제는 '가을의 전설'로 남겨질 이 순간을 간직하며...
.
.
.
2008.10.18-19
거창 금원산자연휴양림에서
'신나는 가족 캠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캠핑하는 사람들' 우린 서로를 닮아가고 있는 것일까? (0) | 2008.10.30 |
---|---|
어머니의 품, 지리산 언저리의 가을 들판을 거닐다. (0) | 2008.10.14 |
서라벌 들녘에서 가을을 만나다 - 미리벌 父子의 영남정모 나들이 (0) | 2008.10.02 |
내가 섬이 되고 섬이 내가 되는 곳... 혼자 떠난 '섬마을 토영' 나들이 (0) | 2008.09.12 |
[대마캠핑 후기 별책 부록] 대마도 캠핑에서 살아 남기 (0) | 2008.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