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태산에서 맞은 새가을
남쪽지방 끝에서는 쉽사리 가기 힘든 강원도를 처가로 둔 행운으로
명절이나 휴가철이면 이런저런 이유로 강원도를 찾습니다.
작년 추석부터 시작된 금대리에서의 몇 번 캠핑도 그런 연유이지요.
어른들도 찾아뵙고 모처럼 야외의 공기좋은 곳을 찾아 바람도 쐬어드리고
무엇보다 평소 2박 3일로는 가기 힘든 먼 거리도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람들로 북적일 금대리보다는
근처의 조용한 휴양림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치악산 휴양림과 몇군데 장소를 저울질 하던 중 뽈뽀리님을 비롯한 몇분 들의 청태산 후기를 보고
'바로 저곳이야!'하고 무릎을 쳤답니다.
몇해 전 입구를 씨익 둘러보고는 미천골로 달아빼고 말았던 청태산인데
새삼 새롭게 다가온 청태산 휴양림은 몇몇의 염려를 잠재우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울창한 숲.... 그것도 쭉쭉 뻗은 잣나무 숲.... 이 한가지로 충분해 보였기에
청태산으로 내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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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km 네시간을 넘게 달려 자정이 넘어 도착한 청태산 자연휴양림에는
콜멘헥사를 머리에 인 돔텐트 한동이 잠들어 있다.
행여 한밤 단잠을 깨울까 살금살금 텐트를 올리고
잠든 아이들을 텐트에 누인다.
어둠속에 드러난 잘생긴 나무들이 바로 옆에 미끈 미끈한 모습으로 자리한다.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혼자 뭐가 그리 좋은지 미친 넘처럼 피식피식 웃으며
맥주 몇캔을 비우며 마냥 기분 좋은 첫날밤을 보낸다.
토요일 아침 텐트 앞으로 펼쳐진 오솔길
당초 맑을 것이라는 연휴의 일기예보는 점점 어두워져 간다.
소나기에서... 한두차례 비... 흐리고 비.....
미처 예상치 못한 쌀쌀한 날씨에 마침내 빗방울이 나리기 시작...
서둘러 타프를 치고 화로대를 꺼내 본다.
아침 일찍 산책(?) 다니시는 아주머니에게서 배웠는지
이녀석 처음 보는 잣 몇 송이 주워와서는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청솔모 마냥 까대고는 하얀 열매를 찾아 낸다.
잣 죽 좋아하시는 할아버지 선물이라나?
손놀림이 부지런해 진다.
쌀쌀한 날씨와 비바람에 어른들 모셔 오는건 포기하고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쿨러 가득한 먹거리를 두고 시내 식당으로....
"소갈비는 질기기만하고 돼지갈비가 최고여!"
자식 주머니 배려하는 부모 마음인가 보다.
쇠약해진 몸으로 몇 점 드시지 못하는게 마음에 걸린다.
명절 지낼 고기 몇 근으로 든든한 장모님
고스톱으로 모아둔 동전을 건네 받고는 즐거운 솔민이
한나절을 처가에서 그렇게 보내고 다시 청태산으로 돌아 온다.
원주에서 40k이지만 영동선은 막히지 않아 30여분 남짓 달려오는 길
TV 에서는 '밀양'의 송광호가 운전대를...
나도 부지런히 가속 패달을 밟아 본다.
잠시 들른 둔내면 소재지는 스노우보드 판때기를 연상하는 간판들로 잘 정돈되어 있다.
몇해 전 우리 가족이 처음 겨울 스포츠를 접한 곳.
하루종일 내리는 비와 바람으로 움추린 하루가 저물어 간다.
분명 집에서 출발할 때는 열대야니 이상 고온이니 하며 에어컨을 틀었는데
해발 850m의 비바람부는 숲 속은 우리 몸을 겨울 추위 속으로 내 몬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넣어 두었던 유담포 두개를 꺼내어 물을 끓인다.
변변찮은 옷가지로 하루종일 떨었던 집사람과 아이들은
유단포를 끌어 안고 텐트 속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다시 홀로 남겨진 시간
모닥불을 친구 삼아.....
깊은 숨 내쉬는 나무들을 벗 삼아
아쉬운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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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워 내리던 빗소리가 그쳤다.
숨가쁘게 불어대던 바람도 숨고르는 이른 아침
앞 마당의 실개울이 소리 죽여 흐르는 길을 따라
정막만이 감도는 사이트를 뒤로 하고 홀로 숲 속을 헤메어 본다.
맑디 맑은 아침 숲의 기운을 온 몸으로 받으며
이제는 닫아버린 1야영장 숲을 홀로 찾아 본다.
며칠 비바람에 시달린듯
제모습을 잃은 개미취가 손짓하는 숲길을 거닐노라면
조금만 고개 숙여 눈 높이를 맞추면
수많은 들꽃들이 성큼 다가선다.
솔 숲에 고고하게 자리잡은 엉겅퀴를 지나
쑥부쟁이 꽃 잎의 영롱한 이슬에
복잡한 마음 씻을 무렵
길가에 무리지어 돌아 보는 이 없는
'개여뀌' 열매 끝에서는 저만치 가을이 떨어진다.
뚝... 뚝....
혼자만의 행복한 숲 속 나들이를 즐기고 돌아온 야영장에는
솔민이 홀로 깨어 아비를 반긴다.
(혼자서 얼마나 나를 찾았을꼬!)
그간 궂은 날씨에 (모닥불가도 추웠다.)
밀린 숙제하듯 아침부터 구워댄다.
타프 밖으로 한발짝 나오니
온 숲이 내것이 된다.
고요하기만 했던 숲에 '숲체험' 참가한 사람들로
한 순간 부산해 진다.
우리는 오랜만에 구경하는 사람들이라 반갑고...
저들은 추운 날 빗속에 캠핑하는 사람들이 신기하고....
솔민이는 새로운 놀잇감을 찾아냈다.
장작 쪼개서 '돛단배?' 만들기
건조한 선박 진수식~~
7부 청바지 차림으로 떨어대는 집사람은
담요를 끼고 살고
올만에 모습을 드러낸 솔지도
후드에서 머리를 꺼낼 생각을 안한다. ㅠㅠ
조금만 날씨가 도와주었어도... 아니 조금만 준비를 더 하고 왔어도....
이 좋은 숲을 마음껏 만끽할 터인데
움츠려 있는 가족이 안스럽다.
청태산 휴양림은 화롯대 규제가 심하지는 않다.
다만, 주변 산막에 숙박하는 객들의 항의가 많다나?
(산림 내에서 불피워도 되냐고....ㅠㅠ)
관리소 직원분이 한번 다녀 가셨다.
"불을 피워도 조그맣게 피워주세요."
(동의했다. 이 좋은 숲에서 화로마저 활활 피울 생각을 한다면 너무 이기적인것 같다.)
청태산(靑太山)이란 이름의 연유가 그래서인지 곳곳에 이끼가 많다.
이끼 사이의 일엽초가 눈에 띤다.
(도심 속에서는 목부작이나 석부작에서나 보았던...)
별거 아닌 작은 풀잎에서도 감동을~~
인근의 아이들이 휴양림을 만끽할 즈음
솔민이는 카메라를 들고 설레발을 친다.
밤 굽는 모습도 담아보고
식수대도 담아 보고
화장실도 담아 본다.
어디선가 말벌집도 모셔 오고
아비 닮아 가려는지
물봉선도 한 송이 어슬프게 업어 왔다.
추운 날씨는 몸을 웅크리게 하기도 하지만
가족간 거리감을 좁히는 순기능도 있다.
점심이 지나고 한줌 햇살이 나릴 즈음
웅크린 몸을 일으켜
휴양림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제 3야영장에는 라운지가 올라갈 만한 데크도 몇개 보인다.
(하지만, 여름철 외에는 2야영장만 운영되는 듯)
여름을 만끽하던 저 푸르름도
머지 않아 훌훌 비워 버리고
빈 몸으로 매서운 겨울을 준비하리라.
하지만 가을은
데크 위를 덮어가는 � 잎에서나...
한 두 잎 떨어지는 낙엽에서도
때로는 조그만 결실들을 따라서
시나브로 다가 오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청태산은 여러 숲체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오감 체험로 가는 길
자칫 지루해 질 수도 있는 나무이름 하나 익히는데도
세심한 배려가 숨어 있다.
나도 처음 의미를 알게 된
'꼭대기에 구름이 걸려있다던 미루나무~~'
암석의 공명을 실험하는 바위 구멍도 있고
장애인까지 배려하는 숲 탐방로 공사도 마무리 중이다.
보고, 듣고, 내음을 맡고, 만져보고, 소리도 들어보고....
그야말로 오감 체험 맞다!
수 키로에 달하는 잘 정비된 임도를 따라 돌아 오는 길
소리없이 가을은 쌓여 가고
투구꽃의 날렵한 꽃매무새에도
용담의 수줍은 봉우리에도
이름모를 들꽃의 이파리에서
가을은 제 각기 다른 빛으로 다가오고 있다.
소리없는 들꽃들의 향연과 함께.....
지난 봄 금대리에서의 칼국수가 맛있으셨는지
장모님은 이번에도 채반 한가득 밀어 놓으셨다.
늦은 점심겸 저녁으로 그 많던게 뚝딱 없어진다.
(한그릇 먹고 난 후 다시 찍은거라 국물이... ^^*)
돌아 오는 길 잠시 구경하러 찾아 간 숲 생태안내소
이것 저것 만져도 보고
다음에는 꼭 문패하나 다시 만들어가야지 하는 약속을 남긴채
코스모스 활짝 핀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온다.
사람사는 이야기가 넘쳐나고 정이 넘치는
잘 갖추어진 오토 캠핑장에서의 캠핑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없이 소중하다.
다소 불편하고
힘든 일들도 있겠지만
아름다운 자연은
소중한 내 가족은
그 모든 것을 보상해 주고도 남기에....
2007년 가을은
청태산에 남겨 두고온 추억 한자락과 함께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나보다.
2007.9.21-23
청태산자연휴양림에서